<무방비> W. 제이치(blog.naver.com/jae_ch) -2차 수정을 금합니다! "쪽-" 종현은 볼에서 갑작스레 느껴진 감촉에, 화들짝 놀라며 쥐고있던 펜을 떨어뜨렸다. 책위에 떨어진 펜은 데굴데굴 굴러서 조그마한 마찰음을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위에 있던 몇몇의 학생들이 잠시 시선을 주었으나, 곧 거두며 각자의 일에 다시 몰두했다. 종현은 한숨을 내쉬며 이를 꽉 문채 작게 속삭였다. "또 너냐?" 그러나 상대방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말은 건넨게 아니라 그저 혼잣말이었기에 상관없었다. 흐름이 깨져버린 탓에, 종현은 공부하던 책들을 다 가방에 쓸어 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뒤에 서있던 사람을 밀치고 종종걸음으로 도서관을 나섰다. 종현은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자신을 따라올 것이라는 걸. 이 이상하고도 웃긴 일은 한 달 전부터 이어져왔다. 한참 취업준비에 바쁜 탓에 종현은 새학기가 시작한 이래로 거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날은 시험기간까지 겹쳐서 도서관에서 밤샘공부를 하고있던 참이었다. 도서관 책꽂이에 기대서서 정신없이 전공서적을 뒤적이고 있던 도중, 누군가가 갑자기 자신의 손을 덥썩 잡아왔었다. 놀라서 떨어뜨릴 뻔한 책을 낯선 그 사람이 반대쪽 손으로 대신 받아서 빈 책장에 꽂았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화라도 내려 했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자신의 손등에 입을 맞춰오는 것이 아닌가. 손을 잡은 상대가 남자라서, 게다가 모르는 사람이어서 당황한 종현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그런 종현을 놔두고 그 남자는 유유히 사라져갔다. 종현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가 입고있는 과잠바가 종현의 눈에 들어왔다. 자신보다 한 학번 아래이며, 체육학과 학생이었다. 그것이 종현이 그 남자에 대해 아는 것의 전부였다. 종현은 처음엔 별별 생각이 다 들었었다. 그 남자가 자신이 게이인걸 알고 접근한걸까, 그렇다면 어떻게 안 것일까. 아니면 무슨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일까. 멀쩡하게 생겨서는 자신한테 대체 왜이러는 것일까. 종현은 그 남자의 정체가 궁금하긴 했으나, 그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재수를 했고, 군대를 다녀온 뒤로 휴학을 두학기나 더 해서 남들보다 취업시기가 많이 늦어졌다. 따라서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집안사정이 넉넉치 않아서 학비도 직접 벌어야 했기에, 종현에게 그런 관심은 사치에 불과했다. 그래서 일단은 미뤄두기로 했다. 그 남자에 대해 알아내는 것을. 그리고 그 남자가 뭘 하든말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래서 지금의 사태까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젠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갑자기 습격을 하는 그였다. 종현은 그를 제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으나, 말할 타이밍을 계속 잡지 못하고 있었다. 대화가 길어지면 어떡하나,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어떡하나, 이런 쓸데없는 고민들이 자꾸만 망설이게 했다. 갑자기 입을 맞추는 것 이외에는(물론 입술에다가 한 적은 없다) 딱히 큰 피해는 주지 않으니, 그냥 냅두어도 상관 없을 것도 같았다. 어쩌면 제풀에 지쳐서 그가 이 이상한 짓거리를 그만 둘 수도 있으니깐. 하지만, 오늘 처럼 공부에 흐름이 끊겨서 방해되는 일이 잦아지면, 그럼 좀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종현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계속 자신을 뒤쫓던 발소리도 덩달아 멎었다. 조금 주저하다가 뒤를 돌아보니, 눈을 마주쳐오는 남자가 있었다. 종현은 뒤돌아서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남자가 그 자리에서 종현을 빤히 주시했다. 종현도 지지않고 그 눈을 마주했다. 어느정도 근접한 거리에 도달 했을 때, 종현은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한 달만에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얘기 좀 하지." 종현을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엔 잠시 미소가 지어졌다. 종현은 이 남자가 혹시 싸이코가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드디어 나한테 관심 가져주는 거야?" 그리고, 종현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10분 동안 그들은 아무 대화도 없었다. 일단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카페로 들어와서, 서로 음료를 주문해서 마주 앉긴 했는데,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종현은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고, 남자는 여유있게 종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나도 달게 느껴지지 않는 밀크티를 거의 다 마셔갈 때 쯔음 종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언제 그만둘건데." 긴 고민끝에 나온 첫마디에, 남자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종현은 제 앞에서 신나게 웃는 남자를 뚱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래도 별다른 말 없이 그가 다 웃을 때까지 참을성있게 기다려 주었다. 한참을 웃던 남자가 대답했다. "보통은 왜 그러는지, 혹은 누구냐던지 그런걸 먼저 묻지 않나?" "나한테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 단지, 너가 빨리 그 변태같은 짓을 그만두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지." "흠.. 그만 둘 생각은 없는데." 종현은 말문이 턱- 막혔다. 어쩐지 대화가 길어지는 것은 물론, 말이 잘 안통할 것 같기도 하다. 종현은, 유치하긴 해도 상대를 금방 지치게 할 수 있는 공격적인 화법을 택했다. "근데, 왜 반말인데?" "반말은 너가 먼저 했는데." "내가 너보다 한 학번 위야." "나 재수했는데." "..나 90년생이거든?" 크흠- 하며 남자가 헛기침을 했다. 종현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아무튼 나보다 어리다 이거지? 어쩐지 대충 윽박지르고 넘어가도 될 것 같았다. "형이 말이야, 너처럼 한가한 사람이 아니거든? 심심하면 게이바에 가서 놀든," "너 게이야?" 갑작스레 파고든 질문에, 종현은 말문이 턱 막혔다. 의도치 않게 커밍아웃을 한 기분이 든다. 거기서 게이바가 왜 나와..! 겉으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속으로 자책을 하는 종현이었다. 부정하기에도, 긍정하기에도 애매했다. 종현은 눈을 굴리며 적당한 대답을 고르다가, 결국 반문을 했다. "그러는 넌, 게이냐?" "내가 너한테 관심있는데, 너가 남자니깐, 난 게이가 맞겠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밷는 그에, 종현은 점점 자신이 밀리고 있음을 느꼈다. 종현은 카페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원래대로라면 공부에 한창일 시간이다. 좀있으면 알바도 가야한다. 짜증이 확 솟구침을 느낀 종현은 남자에게 쏘아붙였다. "너라고 하지마." "그럼 뭐라고 해? 김종현?" "야." "난 최민호야." "너 자꾸 짜증나게 할래?" "웬만하면 이름으로 불러주지?" 종현은 자신의 잔에 밀크티가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게 아쉬웠다. 가득 차있었다면 아마 최민호의 얼굴로 다 쏟아부어졌을 터였다. 아니다, 그럴 가치조차 없다. 종현은 짜증을 억누르며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나 가야겠다. 난 너한테 관심같은거 전혀 없고, 앞으로도 그럴거니깐 이제 그만해라 최민호." "이름 불러주니깐 얼마나 좋아." 얄밉게도 본인이 듣고싶은 말만 골라 듣는다. 종현은 빙글빙글 웃고있는 그를 뒤로한채 종현은 홀로 카페를 빠져나왔다. 어쩐지 손해본 기분이다. 그냥 말걸지 말고 평소처럼 무시하고 갈껄, 하고 후회하는 종현이었다. 반면 민호는 종현이 나간 빈자리를 바라보며 얼굴 한가득 웃음을 머금었다. 한 달동안 공들인 보람이 있었다. "김종현.." 종현의 이름을 부르는 민호는 어쩐지 즐거워 보였다. 촤악- 바닥에 맥주가 쏟아부어지고, 뒤이어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맥주잔 두세개가 연달아 깨어졌다. 종현은 입술을 꾹 깨물고 대걸레를 들고왔다. 대걸레를 잠시 옆에 세워두고 깨진 유리조각들 부터 줍고있는데, 잔을 깬 장본인이 킬킬거리며 장난을 걸어온다. "어이- 알바생- 미안? 내가 손이 미끄러워서 말이지~ 치우는거 도와줄까?" "괜찮습니다." "어디서 손님의 말을 거역해? 손님이 우스워?" 종현은 무시하고 유리들을 치우는데 몰두했다. 이미 손 여기저기가 베어서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종현은 시급이 세던말던 이젠 바 알바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분노가 머리 끝까지 솟구쳤으나, 여기서 저 만취남과 싸우기라도 하면 오늘 일당을 받지도 못하고 쫓겨날까봐 애써 참아보는 종현이었다. 그런 종현의 속도 모르고, 자신을 무시하는 알바생에게 화가난 만취남은 넥타이를 거칠게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반동에 의해 뒤로 넘어가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만취남은 이미 이성이 없는 상태였다. 그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옆에 있는 대걸레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유리를 치우고 있는 종현을 향해 대걸레를 휘두르던 순간이었다. "이- 잇! 뭐야 이거?"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에 의해 저지당한 만취남은 대걸레를 힘없이 떨어뜨렸다. "술 취했으면 빨리 집이나 가시죠." 종현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그쪽을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민호가 화난 표정으로 만취남의 두 팔목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만취남은 민호의 힘에 밀린 것이 자존심 상해서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이.., 이 어린놈이..!" "여기서 더 큰 일 생기기 전에, 포기하시고 그만 가세요." 잠시 정적이 흐르고, 만취남은 자신이 힘으로 당해낼 수가 없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 "놔- 이자식아. 너 다음에 또 보기만 해봐..!" 민호는 팔목을 놓아주며 턱으로 문쪽을 가리켰다. 만취남은 온갖 욕설을 씨부리며 자신의 동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제서야 바 안이 좀 잠잠해졌다. 민호는 무표정으로 종현한테 눈길을 돌렸다. 종현은 주춤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걸까. 미행한 걸까. 저자식은 할일이 그렇게 없나. 일단 도와줬으니 고맙긴하지만.. 어쩐지 고맙다는 말을 하기가 민망해서 그의 눈길을 피하며 깨진 잔들을 치웠다. 그 때, 민호가 성큼성큼 다가가서 종현의 손목을 잡고 일으켰다. 덕분에 종현이 들고있던 유리 조각들이 떨어져서 더 잘게 깨어졌다. 소란이 좀 잠잠하다 싶다가 뭔가가 또 깨어지는 소리가 나자 바 안의 시선들이 몰렸다. "너 이게 뭐하는..!" 종현의 말을 무시하며 민호는 그대로 종현를 바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너 미쳤어? 나 일하는거 안보이냐?" "그 일 그만둬."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이거 놔!" "안 그러려고 노력했는데, 이젠 간섭 좀 해야겠어." "뭐..? 뭘 해?" "아까 도와줘서 고마웠지? 그럼 이제 여기 그만두고 나랑 어디 좀 가자." 어이없어서 대꾸도 못하고 있는 종현을 억지로 차 태워서 끌고 온 곳은 병원이었다. 반항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종현은 이제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얌전히 치료를 받고, 민호가 이끄는 대로 다시 민호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나서, 맘에 안든다는 표정이긴 하나, 잠자코 안전벨트를 매는 종현이었다. "원래 그렇게 포기가 빠르나?" 운전석에 올라타며 민호가 말했다. 종현은 무슨 소리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절대 안간다고 버티고 난리 칠 줄 알았는데, 순순히 따라오길래. 까칠하긴한데, 의외로 고분고분하군." "뭐래. 피곤해서 그런거야." "피곤하면, 이것도 받아줄껀가." 말을 마치자마자 자신의 입을 덮어오는 민호의 입술에 종현은 당황해서 민호를 밀어내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민호에게 붙잡혀서 차 시트에 내리눌러졌다. 이번엔 고개를 비트는 종현 때문에, 민호가 종현의 양 손을 한손으로 포박하고 남은 손으로는 종현의 턱을 쥐고 얼굴을 고정시켰다. 완전히 붙잡힌 종현은 선택권없이 자신의 입술을 내어줄 수 밖에 없었다. 차안엔 한동안 입술이 맞부딪히는 진득한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종현의 입안을 훑으며 민호는 자연스럽게 의자 등받이를 눕혔다. 그리고 조수석 쪽으로 넘어가서 종현의 허리 양 옆을 무릎으로 짚고 키스를 퍼부었다. 완벽하게 자신이 당하는 자세가 되자, 종현이 힘을 팍- 줘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만-" 종현은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민호는 붙잡고있던 종현의 턱에 힘을 줘서 종현의 얼굴을 다시 정면으로 돌려놨다. 그리고 그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깜깜한 와중, 썬텐을 짙게한 창문으로 희미하게 비춰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만 의존해서 종현의 얼굴을 보니, 지나치게 관능적으로 보였다. 바에서 일하던 차림새 그대로 나와서 하얀 와이셔츠 한장에 핏이 딱 맞는 까만 정장바지를 입고있는 것 또한 민호를 자극시켰다. "섹시해, 김종현." 종현은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안경부터 맞춰라." "내 눈은 정확해." "무슨 자신감이야?" "내 오피스텔 갈래?" 종현은 바로 거절하지 않는 자신 때문에 당황하는 중이었다. 미친건가. 이 놈의 키스에 정신이 나간걸까. 아님 취업 준비 스트레스 때문에 판단이 흐려진 걸까. 것도 아니면.. 이젠 진짜 잊은 걸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갑자기 종현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안돼..! 잊어야 한다. 그러려면, 도움이 필요했다. "..가자." "뭐?" "오피스텔." 들어서자마자 현관문에 밀어붙여진 종현은 민호의 키스를 받아내며 그의 외투를 벗겨냈다. 갑작스레 적극적으로 돌변한 종현의 태도에 민호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종현이 입고있던 와이셔츠를 양옆으로 확 벌렸다. 바닥에 단추가 나뒹굴었으나 둘 중 어느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민호는 종현의 혀를 뽑을 듯이 빨아들이며 종현의 바지와 속옷마저 다 벗겨냈다. 손이 조금 느린 종현은 이제 겨우 민호의 바지 벨트를 풀었을 뿐이다. 민호는 종현을 안고 쇼파로 데려갔다. "왜, 침대로 안가고." "방까지 가기에 너무 멀어." 종현은 민호의 다급한 목소리를 비웃을 처지가 아니었다. 민호가 불시에 자신의 것을 쥐어왔기에. "흡..! 야, 너 그렇게 갑자기..!" "급하다고 했잖아." "하, 그래도, 읏, 흐읏..! 좀만 천천, 으응, 아..!" 빠른 속도로 자신의 것을 자극해오는 민호에 종현은 온몸을 쇼파에 늘어뜨린 채, 그 손길을 받아냈다. 민호는 자신의 옷가지를 다 벗어던지고 종현의 입술을 깨물며 종현의 것을 더욱 빠르게 흔들었다. 애초부터 흥분해 있던 것이기에 빠른 사정이 이루어졌다. 사정액을 종현의 입구에 바른 민호는 손가락 하나를 안으로 찔러넣었다. 안기는 것이 익숙한 듯, 종현의 안은 거부감없이 민호의 손가락을 받아들였다. 민호는 잠시 멈칫했으나, 개의치않고 갯수를 늘려나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예고없이 종현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읏..!!" 민호는 종현의 안 깊숙히 자리잡았다. 하지만, 바로 피스톤질을 하진 않고 종현의 몸을 애무했다. 목에 머물던 입술이 가슴으로 옮겨가고, 배꼽주위를 맴돌았다. 종현은 참을 수 없는 그 느낌에 민호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민호를 재촉했다. "빨리.. 흑.." 민호는 울먹이는 소리에 그제서야 종현의 손을 잡아쥐며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욕망을 절제하며 신중하게 방아질을 하는 민호였다. "읏, 흐읏, 으, 윽, 읍, 흣..!" "김, 종현. 나 봐. 눈 감지마." 종현은 저도 모르게 꾹 감았던 눈을 뜨고 흐릿한 초점을 애써 눈앞의 남자에게 맞추었다. 반쯤 나간 이성으로 인해 앞의 얼굴이 누군가의 얼굴과 겹쳐보였다. 종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금새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방울을 민호가 핥아올렸다. 그리고 허리짓에 박차를 가했다. 살 부딪히는 소리가 점차 격해졌다. "아, 하앗..! 으응, 으, 그.., 그만..! ㅎ..형, 제발..! 읏..!" 종현이 절정에 오르며 신음을 내질렀다. 민호는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동시에 종현이 두번째 사정을 했다. 민호의 허리에 감겨있던 종현의 다리가 힘이 풀렸는지 쇼파 아래로 추락했다. 종현은 눈을 감고 사정의 여운을 느끼며 숨을 헐떡였다. "허억, 하, 후으.." 호흡을 고르다가 문득 민호가 아직 자신의 안에 있음을 알아차린 종현이 눈을 뜨고 민호을 보았다.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민호에, 종현은 당황했다. "너.., 왜," "누구야." "어?" "형이라고 그랬잖아. 그거 나 아니지." "......." 대답을 하지 못하는 종현에, 민호는 종현의 안에서 빠져나왔다. 종현은 민호가 아직 배출하지 않은 상태인 것을 보았다. 민호는 아무말없이 속옷을 입고 쇼파에 기대어 앉았다. 종현은 마른 세수를 했다. 자신이 실수를 한 것이 틀림없다. 그것도, 상대가 아주 기분나빠 할 만한 그런 실수. "미안.." "......." "진짜 미안해. 실수였어." "..너 방금 누구랑 섹스했어?" "너." "너가 누군데." "..최민호." "그럼 됐어. 피곤할텐데 여기서 자고가. 내일 학교 데려다줄께." "안그래도 되는..," "미안하면 내말 들어." 종현은 말없이 화장실로 들어가는 민호를 눈으로 좇았다. 화장실 문이 닫히고 물소리가 들렸다. 종현은 쇼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잊고싶었다. 이젠 잊을때도 되지 않았을까. 혹시, 최민호라면,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꺼내줄 수 있지 않을까. 절망과 원망의 구덩이에서. 완전한 여름으로 접어드는 준비기인만큼 더위가 슬슬 기승을 부렸다. 종현은 아이스커피 두 잔을 사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날 이후 바뀐 것이 있다면 둘의 사이였다. 딱히 정의 내릴 수 없는 사이였던 그들은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연인이라고 칭해도 될만큼 급발전 되었다. 『 "최민호. 니가.. 나 좀 도와줄래?" 』 샤워하는 중간에 대뜸 들어와서 하는 부탁을, 민호는 조금도 주저없이 받아들였다. 민호는 드디어 자신에게 손을 뻗어오는 종현에게 고마웠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보이는 셈이니까. 탁. 눈을 맞추지도 않고 커피만 무심히 전해준 채, 공부를 시작하는 종현에 민호도 그저 옆에서 조용히 책을 읽었다. 종현은 민호가 자신을 방해하지 않아서 만족스러웠고, 민호는 종현이 옆에 있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웠다. 둘이 하는 것은 별로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같이 저녁을 먹고, 종현이 알바하는데에 민호가 데려다주고, 또 알바끝나고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게 다였다. 혼자가 편했고, 혼자이길 바랬던 종현은 자신도 모르게 차츰 민호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들어가." "어. 조심히 가." 늘 반복해왔던 무미건조한 인사를 건네고 종현은 집으로 들어왔다. 문득, 갑자기 느껴지는 묘한 위화감에 종현은 현관에서 잠시 멈짓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앞에서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있었다. 그새. 2년이란 세월이, 거짓말 처럼 2주만에 잊혀진 것일까. '형, 나 얼마만큼 사랑해?' '그걸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종현아.' 진심인줄 알았다. 진심이어야 했다.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해도, 내 첫사랑임에 분명했고, 난 그와 정말이지 평생 함께하려 했다. 외국에 같이 나가 살라고 비자도 만들고, 자금도 마련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었다. 바보같이 혼자만 기대에 가득차서. 샤워를 하고 나와, 맥주캔을 땄다. 두어모금 마셨다. 시원하긴 했으나, 부족했다. 냉장고를 열어서 소주병을 꺼냈다. 따기전에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내일 수업이 오후에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소주도 따버렸다. 기분이 더러웠다. 가끔 이렇게 기억이 생생히 나버리면, 술을 찾았다. 몇잔 기울이지도 않았는데 어지럽고 머리가 빙빙 돌았다. 하여튼, 술약한건 알아준다니까. 종현은 힘빠지는 웃음을 흘리며,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으으음.. 더워..." 종현은 습관적으로 이불을 발로 차냈다. 하지만, 그래도 더위가 가시질 않았다. 종현은 짜증이 난 상태로 자신의 옆에있는 것을 밀어냈다. 그러나 꿈쩍도 안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종현은 눈을 번쩍 떴다. "......." 놀랍지도 않았다. 떡하니 자신의 옆에서 자고있는 최민호를 보고. 물을 마시려고 일어났는데, 몸에 걸친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제서야 방안에 굴러다니는 콘돔껍질과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멍하니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방구석에 있는 자신의 반바지를 주워입고 거실로 나갔다. 물을 따라서 식탁 의자에 앉으려는데, 뒤늦게 온몸에 통증이 몰려왔다. 술취한 사람데리고 뭐한거야. 속으로 욕을 시부리며, 불편하게 의자에 걸터앉는데, 타이밍 좋게 민호가 거실로 나왔다. "굿모닝-" 탐탁치 않아하는 종현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민호는 냉장고에서 쥬스를 꺼내 종현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침부터 표정이 왜 그러실까." "..몰라서 물어?" "술이 약한가봐." "......." "숙취도 심하고." "그래서 뭐." "해장국 먹으러 가자." "아침부터 어딜 또..," "지금 12시 지났어. 점심이야. 너 수업 3시지? 씻고 밥먹고 수업들어가면 딱 되겠다." "......." "먼저 씻을래? 아님, 같이?" 능글맞게 쳐다보는 민호를 뒤로하고, 종현은 한숨을 쉬며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 문이 닫히자, 민호의 표정은 굳어갔다. 힘들게 얻은 사람인만큼, 소중히 대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자신을 앞에두고,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아프게 했다. 취한 종현이 버티지 못할 때 까지 몰아세웠다. 자신은 그정도로 마음이 착잡했으니까. 항상 절정에 다다르면 자신의 이름이 아닌 '형'을 찾는 종현이었다. 둘이 어떤 사이였고, 얼마나 깊은 사이였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건 그 사람은 자신을 화나게 하는 존재라는 것. 민호는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욕실문을 열었다. 그자리에서 곧장 탈의를 한 뒤, 눈을 감고 머리를 헹구고 있는 종현에게로 다가가서 샤워기를 껐다. "뭐ㅇ.." 놀랄 새도 없이, 민호의 혀가 종현의 입 안으로 들어왔다. 종현은 눈이 따가워서 뜨지도 못하고 거품이 묻은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민호는 종현의 두팔을 위로모아들고 자신도 욕조안으로 들어서며 종현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거침없는 키스에, 종현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욕조에 미끄러져 걸터앉았다. 한참을 종현의 입안을 휘젓다, 민호가 입술을 떼고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 "갑자기 무슨," "대답부터 해." "..최민호." "기억해. 내가 누군지." "대체 지금 뭐라는.., 윽..!" 민호는 종현의 몸을 일으킨후 뒤로 돌려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곧장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야, 야..!! 최민..! 윽, 호!!!" "어제는 내가 누군지 못맞췄으니까, 오늘은 확실히 새겨주려고." "아윽, 윽! 아파 새끼야!! 아프다고!" 종현은 중심을 못잡고 휘청대다가 간신히 욕조 틀을 붙잡고 버텼다. 온몸의 뼈가 어긋나서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아픈 그와중에도, 저도 모르게 느껴서 허리를 움찔거렸다. 민호가 손을 뻗어서 종현의 것을 움켜쥐었다. "음..! 윽, 아! 악..! 하.." 뜨거운 숨이 욕실을 가득 채웠다. 민호는 허리를 바쁘게 움직이며, 종현의 것을 애무했다. 얼마가지 않아, 종현이 사정하기 직전까지 갔다. "아, 아흡..! 읍..! 뭐하는거..!" 민호는 종현이 사정을 하지 못하게 앞을 엄지로 막았다. 종현은 욕조에서 한쪽 손을 떼고 민호의 손을 치우려고 애를 썼다. "이거, 흣, 치.., 아읍, 치워!!" "내가 누구라고?" "읍, 최민..! 최민호..!" 그제서야, 민호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손을 뗐다. 종현은 곧바로 사정을 했다. 민호 또한 종현의 안에 마지막으로 깊숙히 들어선 채, 사정을 했다. "헉, 너..헉, 갑자기 들어와서 무슨 짓이야..!" "문이 안잠겨 있길래." "너 진짜..," "빨리 씻고 나가자. 이러다 늦겠어." 물을 틀어서 종현의 머리를 마저 헹구는 민호때문에, 종현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가만히 민호의 손에 머리를 맡긴 종현은, 아까와 달리 많이 조심스러워진 손길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민호의 행동이 다시 생각해보니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자신이 또 형을 찾은 것이겠지. 어제 술먹고 민호를 불러다가 그 앞에서 엄한 사람 이름을 불러댔고, 거기에 또 화가 났겠지. 잊은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보다. 먼저 도와달라고 손을 뻗어놓고, 전혀 진전이 없는 자신이 우습다. 스스로를 향한 자책이 가득담긴 한숨을 내쉬는데, 커다란 손이 머리를 꾹 눌러온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그 행동 뿐이었지만, 종현은 어쩐지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정도로 의지가 됐다. 종현은 딱딱하게 굳혔던 몸에 힘을 풀고, 민호에게 기대었다. 민호는 그런 종현을 지탱해주며, 지금은 이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원래는 5분도 안걸렸을 샤워를, 30분도 넘게 하고 나왔다. 괜시리 짜증을 부리니, 손수 드라이기로 머리까지 말려준다. 종현은 따뜻한 바람과 함께 머리를 슬슬 헤집는 손길의 그 환상적인 조화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그 손길을 가만히 느꼈다. 여기까진 좋았다. 기분도 좋았고, 나른한 오후의 햇살도 좋았고, 집안에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사실마저 좋았다. 다 좋았는데.., 민호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종현은 얼어붙었다. 제 귀가 제대로 들은게 맞는지, 종현은 확인차 다시 물었다. "뭐라고..?" "이집에서 나와서 나랑 같이 살자고." 종현은 굳어진 표정을 풀 수가 없었다. 이 집은 형, 그러니깐 이진기와 동거하던 집이었다. 잊기로 마음먹었으면 이곳을 나오는건 당연했다. 그럼에도, 왜 자신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직은 최민호가 못믿겠어서? 혹은, 이진기를 잊을 의지가 부족해서..? 지금으로서는 전자와 후자, 둘 다인 것 같다. 종현의 눈동자게 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민호는 그런 종현을 응시하며, 흔들림없이 재차 말했다. "같이 살자, 종현아." "......." "내 오피스텔로 너가 들어오기만 하면 돼." "대체.. 왜..," "네가 좋으니깐. 너와 매일매일을 한집에서 이렇게 함께하고 싶으니깐." 종현의 입꼬리가 애매하게 올라갔다. 이 말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세상에서 의지할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었다. 사업 때문에 늘 해외에 계신 부모님은, 종현에게 무관심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종현은 그들이 명분상 들인 양자일 뿐이었으니까. 물질적으로는 거의 모든걸 다 가졌는데도, 항상 부족했고 허전했다. 그것이 애정결핍이라는 것은 진기를 만난 이후 알게된 사실이다. 종현을 끔찍히도 챙기는 진기에게, 종현은 당연히 호감을 가졌고, 점차 모든걸 내어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에겐 진기가 늘 우선이었고, 진기 또한 그랬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직도 생각이 난다. 입대하는 날, 진기를 붙잡고 펑펑우는 자신을 다독이던 그 다정한 미소가. "형이 외국갈 준비 마저 다 해놓을 테니까, 걱정말고 잘 다녀와." 그것만 생각하며 버텼다. 그리고 손꼽아 기다리던 첫 휴가날, 집으로 곧장 달려갔다. 혹여나 목소리를 들으면 더 보고싶어 질까봐, 일부러 전화하는 것도 참고 생으로 버틴 종현이었다. 집으로 달려가면 당연히 자신을 반기며, 다정한 손길로 어루만져줄 줄 았았다. 하지만, 도어락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을 때 보인건,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말 그대로 온 집안이 텅텅 비어있었다. 가구도 거의 안남아있고, 그나마 남아있는 서랍장은 활짝 열린채로, 초라하게 남겨져 있었다. 진기와 함께 모으던 여행 자금, 자신의 용돈 통장, 인감 도장, 심지어는 비싸게 주고 맞춘 커플링까지. 돈이란 돈은 전부 다 사라지고 없었다. 강도가 든 것이라고, 진기도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숨고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창문에 붙여진 쪽지가 그것마저 못하게 했다. -그동안 즐거웠다. 그리고, 미안하다. 그 쪽지를 보니, 웃음밖에 안나왔다. 이보다 더 비참할 순 없었다. 그 사람한테 자신은 그냥 돈이었을까? 물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까..? 차라리, 미안하다고 하질 말지 그랬어. 미안하단 말때문에 더 비참해 지잖아. 그건 그정도로 가치가 없었음을 증명해 보이는 말이니깐. 그대로 복귀해서, 아무생각 없이 군생활을 마쳤다. 제대를 했음에도, 기쁨도, 자유로움도,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제대하고나서 그렇게 죽은 듯이 지냈다. 집에서 아무리 꼼짝않고 기다려도 진기가 돌아오지 않는 다는건, 그로부터 1년이나 지나서야 깨달았다. 종현은 자신의 삶에 회의감을 느꼈다.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돈이 없다면, 자신은 살 의미조차 없는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그 분들과는 아예 인연을 끊었다. 자신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돈이라면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때부터 복학도 하고, 알바를 뛰며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민호를 만난 것이다. 그래도 진기를 만났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진기는 자신의 돈을 보고 접근했다지만, 민호는 아닐테니까. 그래도.., 자신의 모든걸 다 버리고 민호에게 매달렸는데, 나중에 민호가 진기처럼 자신을 버릴까봐 무서웠다. 만약에 자신은 민호 없이는 못사는 상황이 되었는데, 민호는 자신이 질려서 떠나겠다고 하면, 또 그때와 같은 허탈감을 느껴야 하는거 아닐까. "같이 살자는데, 왜 망설여." 자신을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달동안 끈질기게 따라붙은 최민호라면, 그 싸이코 스러운 집착이라면, 그래도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애써 자신을 위로하려 하는데,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진기가 떠난 건 종현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것이다. 누구든 자신을 쉽게 훌쩍 떠나버릴 수 있다는 그 불안감으로 똘똘뭉친 트라우마. 종현은 울음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너도 나 버리면 어떡해?" "뭐?" 민호의 얼굴에 황당하다는 표정이 점차 번져갔다. 종현은 망설임 끝에, 자신의 두려움을 털어놓았다. "집이고 뭐고, 다 버리고 너한테 매달렸는데, 네가 날 버리면.. 난 어떡하냐고." "하, 그럴일은 절대 없어." "그걸 어떻게 믿어!" "김종현!" 민호가 참다 못해 크게 외쳤다. 그러나, 감정이 격해진 종현은 그 보다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넌 나에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민호는 잠시 동안 말없이 종현을 응시했다.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떨구는 종현이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아서, 섣불리 다가설 수도 없었다. 격양된 종현에게 잠시 감정을 추스릴 시간을 준 민호는, 나즈막하게 말했다. "내가 잊게 해줄게." 종현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채 대답이 없었다. "그러면 되잖아. 너가 전에 무슨일을 겪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딴거 잊으면 다 되는거 아니야?" "......" "나는 자신있는데." "그렇지만..," "내가 지금 걱정되는건, 네가 겁먹고 도망가버릴까봐. 그거 하나인데." "...최민호." "이리와." 민호가 다정하게 양 팔을 벌렸다. 종현은 고개를 들고 민호를 마주했다. 저 팔에 안기면, 안식이 찾아올거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은 사랑을, 진심을 부정당했지만 이 사람은 자신에게 그것들을 다시 채워줄 수 있을거란 확신이 자리잡았다. 그렇지만, 섣불리 다가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번엔 자신이 너무 비겁했으니깐. 종현의 발이 금방 떨어지지 않자, 민호가 한숨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어떻게 해야 네가 날 믿을까." "..나는 널 이용하려했어, 최민호." "......." "널 이용해서 내 기억 지우고 싶어서, 그래서 너 받아준거라고. 너도 날 믿으면 안돼." "난 이용당해도 좋은데. " ".....?" "날 이용해도 좋고, 가지고놀다 버려도 좋아. 근데,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관두는건, 내가 못참겠어." "하지만...," "괜찮아 종현아." "......" "고집 그만 부리고, 이제 이리와." 종현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그제서야 민호에게 가서 안겼다. 민호는 아직 덜말라서 촉촉한 종현의 머리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완전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까지. 그만큼 노력도 많이 했고. 민호는 이제 종현이 다신 울지않게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끌어안아주었다. 속에있는 응어리를 눈물로 다 쏟아낸 종현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들었다. 민호는 잔뜩 젖은 종현의 눈을 보며 장난스레 말했다. "네가 그렇게 무방비한 상태로 있으니깐 자꾸 당하는거야." 종현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민호를 두 팔로 밀어내며 투덜댔다. "그럼 잔뜩 경계하고 있을까? 어? 총도 준비하고 말이지?" "아니. 됐어. 넌 계속 그렇게 무방비하게 있어라." "아 왜!" "넌 내가 지키면 되니깐." fin_